판화가 이철수


지난 겨울 어느 날,<전태일의료센터>건립을 거드는 대표추진위원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산재노동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많이 부족한 현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의료 취약노동자들에게도 의료지원이 필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대표추진위원 역할을 수락하셨고 저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었습니다. 전태일? 왜 전태일이지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그런 외침을 남기고 간 전태일은 우리 현대사에 빛나는 불꽃입니다.
평화시장 봉제공장 박봉의 재단사로 살면서 붕어빵을 사 허기진 여공 누이들에게 건네주던 청년 전태일의 마음자리는 순수했습니다. 순수한 인간애, 그는 그 마음을 심지 삼아 스스로 타올랐습니다. 유관순처럼 누구나의 표상이 되지는 못하고 진보와 노동 운동의 소중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전태일이 우리 사회에서 보통명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의 전태일이 되게 하자는 말입니다. 1970년 11월 분신 이후 5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세상이 많이도 바뀌어서 온통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질의 시대가 된 것인데, 정작 인간은 물건 취급이고, 물질이 오히려 정신계를 넘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상품이 아니다! 라고 외쳐야 할 지경입니다. 사정이 이래서 ‘인간다움의 회복’과 ‘정신적 고양’이 시대의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혜능선사의 <무상송> 첫머리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마음이 평안한데 계율을 지니려 애쓸 것 있나?
-행실이 바른데 참선은 해서 어디에 쓰는가?
마음 공부라는 게 착하게 살자고 하는 공부라는 말씀입니다. 
전태일은 ‘행실이 바른’ 사람입니다. 더없이 '착한 사람'이지요.
<전태일의료센터>도 우리 사회의 '착한 병원'을 꿈꾸고 있습니다.


분신 그 너머 전태일의 마음자리를 생각하면, 우리 시대가 ‘함께’를 회복하고 ‘온전한 나’를 회복하는데 필요한, ‘인간다움’의 아름다운 원형을 전태일에게서 찾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은 아름다운 귀감입니다. 전태일이 보통명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은, 그의 마음자리를 닮은, 진정성이 바탕이 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농사일이나 판화를 새기는 일이 다른 일 아니라지만, 허명의 뜬구름 위에는 밭갈고 씨뿌려 거두는 땅의 단단함이 없습니다. 목판을 새기면서 농사일처럼 정직한 공부가 또 있는지 자주 묻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을 만들지요.
우리들의 보통명사 전태일이, 너도 나오라고 호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기금마련을 위한 전시 <큰그릇이야, 늘 나누기 위한 준비!>를 마련했습니다. 시절인연이 감홍시처럼 무르익은 것이려니..., 마침 가을지나 겨울로 들어서는 무렵입니다. 그 자리에서 한 번 뵙겠습니다.
2024년 가을, 백운에서 이철수